원폭국제민중법정 1차 국제토론회 개최 - 1945년 8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2023년의 ‘확장억지’
2023년 6월 14일
민중법정을 위한 국제토론회 개최
지난 6월 7일,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리는 합천*에서 약 40km 떨어진 성주 가야호텔에서는 ‘1945년 미국의 핵무기 투하의 책임을 묻는 원폭국제민중법정 1차 국제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의 정치적 군사적 의미와 1945년 당시 국제법으로 본 원자폭탄 투하의 불법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삼성 한림대 정치학 명예교수, 에릭 데이비드 브뤼셀자유대학교 국제공법 명예교수, 야마다 토시노리 메이지대학교 법학전 문대학원 교수 등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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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 고영대 대표를 비롯해 토론회를 준비한 사람들은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가 이미 그 당시에도 불법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비록 현실 정치에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지만 적어도 법정에서는 ‘핵무기 투하의 위법성’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법정을 통해 법을 위반한 국가인 미국이 사죄하고 배상할 때 비로소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국제민중법정은 ‘(미국의) 어떤 변명이나 법망을 피하려는 꼼수’가 통하지 않는 촘촘한 법리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가며 2026년까지 매 해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리고, 2026년 뉴욕 NPT재검토 회의의 사전 행사로 ‘민중법정’을 연 뒤 실제 소송까지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국제토론회에서는 ‘평통사’의 회원들과 일본의 ‘원수협-원자폭탄,수소폭탄금지일본협의회’ 회원, 원자폭탄피해자협회 회원등이 백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객석에서 토론을 지켜보았고 질의 응답 시간에는 발제자와 토론자에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 더 알아보기 : 원폭국제민중법정 제1차 국제 토론회 자료와 결과 모아보기
원폭피해자 외면한 정부
1955년 4월에 5명의 원폭 피폭자가 도쿄 지법과 오사카 지법에국가를 제소했다. 이 소송은 원고 대표 시모다 이름을 따서 시모다 소송이라고도 부른다. 제소 이유는 원폭투하가 국제법 위반이며 원폭 가해국 미국에 대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포기되었기 때문에 헌법 29조 3항(사유재산의 정당 보상)에 의해 보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법원은 원폭투하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원고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법원은 일본정부가 충분히 피해보상해야 할 문제라며 일본 정부의 책임이 있음을 선고했다.
1970년 원폭피해자인 한국인 손진두씨가 원폭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하였으나 체포되었고, 일본정부는 손진두씨의 원폭수첩* 지급과 치료 요구에 “밀항해 온 범법자인 데다 국적이 다르니 수첩을 내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손씨는 포기하지 않고, 법원에 제소해 74년 3월에 승소했다. 그해 7월22일 곽기훈씨가 도쿄시에 원폭수첩을 신청하자 일본 정부는 ‘이 수첩은 국외로 나가면 효력이 정지된다’고 하며 국외에 있는 원폭피해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 원폭수첩 : 일본정부가 발행한 피폭자 건강수첩으로, 이것을 소지해야만 치료비 등 원폭피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수십 년에 걸친 싸움 끝에 2003년이 되어서야 일본 국외의 원폭피해자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곽기훈씨와 함께 싸운 것은 한국정부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였다. 한국정부는 한일협정으로 모든 게 끝났다는 일본정부의 논리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일본정부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이후 미국의 범죄행위에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은 것처럼 일제 점령기의 강제징용문제나 위안부 문제도 한국 정부대신 한국과 일본의 시민이 싸워 해결해나갔다. 사실상 한국과 미국 두 정부는 자국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최근 화제가 된 두 정부의 행보도 ‘한일 관계 유대 강화’, ‘핵무기 없는 세상으로 한걸음 내딛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히로시마에서 G7 정상 회담이 열렸다. 이번 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깜짝 방일과 더불어 참가국 정상이 모두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을 방문한 것이 화제였다. 기시다 총리는 G7의 정식 참가국(미국,일본,영국,독일,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외에도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호주, 인도, 브라질,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코모로-아프리카연합대표, 쿡제도-태평양제도포럼대표)도 초청했는데 이 중 등거리 외교노선을 취하며 강대국으로 반열에 들어선 인도가 주목을 받았다. 이 회담에서는 성명서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를 비난하고 G7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겠다는 것과 핵무기군축을 통해 점진적으로 핵무기가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번 G7 정상 회담 이후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약간 상승하였는데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기시다총 리의 지도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답변이 반 수 이상(55%)으로 불만족한다는 답변(26%)을 훨씬 넘어섰다.
4월 한일정상회담 이후 G7 정상회담에 참관국으로 초대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함께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에 함께 참배하였으며,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자와 만나 위로하였다. 또한 일본 기시다총리와 함께 한미일 회담을 위해 워싱턴에 초청을 받는 등의 ‘외교적 성과?’가 주목받으면서 윤대통령은 회담을 전후하여 취임 1년만에 지지율이 5주 연속 상승하였다.
국민의 힘은 “(한일이) 아픈 과거사를 함께 공유하고, 이를 극복하며 양국 정상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 함께 가자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히로시마 위령비 참배와 재조사 거부
그러나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 기시다 총리와 일본정부의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히로시마 G7정상회담 직전인 5월 2일, 입헌민주당 쓰지모토 기요미 참의원이 일본 국회 참의원장 앞으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외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상황에 대한 질문서’를 제출했다. 그는 일본정부가 주도하여 원자폭탄 희생자를 국가별, 지역별로 나눠 조사하고 G7 정상회담에서 조사내용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쓰지모토 의원의 질의서 내용은 10가지 정도로 다음과 같다.
“일본정부는 이미 핵무기가 불러온 여러 피해를 정확히 파악하고 피폭의 진실을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세계에 전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피해상황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히로미사 시와 나가사키 시에서 파악한 원폭피해사망자 자료외에 일본 정부가 직접 조사하고, 특히 외국인 피해자를 나라별로 조사해야 한다. 또한 가장 피해가 컸던 한국인(조선인)의 경우 국회도서관에 있는 ‘육해군관련문서’ 중 ‘히로시마현의 한국인(조선인)은 전시사상자 1만2천9백명, 나가사키현의 한국인(조선인) 전시 사상자 7천9백명’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원폭피해자를 포함한 것인가, 포함한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몇 명인가, 그리고 일본 정부는 구 육해군에서 받은 인사자료를 토대로 당시 조선출신 전적 군인, 군 관련자를 약 24만명으로 파악하고 있으 나 국가총동원법으로 징용한 조선출신자들의 숫자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히로시마의 군 시설에 있던 조선인 전적 군인 및 군 관련자의 숫자, 그리고 ‘조선인 징용자 명부 복사본’으로 파악할 수 있는 당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거주한 조선인의 숫자를 조사해 달라.”
그러나 2주 후인 5월 16일에 도착한 답변서는 사실상 답변을 거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원폭투하 후 78년이 지났으므로 조사에 어려움이 많아 재조사는 어렵다. 질의서에 나오는 ‘육해군관련문서'가 무슨 문서인지 몰라서 답변이 어렵다. (조선인 징용자 명부 복사본 조사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므로 조사하지 않겠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일본정부가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사상자를 조사할 계획은 없으나 원폭피해자 실태조사결과는 계속 공표하고 있으며 피해의 실상을 전세계에 알리는 것은 일본국가의 중요한 책임이다”
이날 일본 언론은 ‘정부는 원폭피해자 재조사하지 않기로’라고 짧게 실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처음으로 히로시마 위령비를 공동 참배하기전 재일한국인 피해자와 면담을 가졌고 감격한 피해자가 감동의 눈물을 흘린 것이 보도되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원폭피해를 알리기 위해 활발히 활동해 온 합천의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는 전혀 연락하지 않았다. 심진태 협회장을 비롯한 일부가 공동 참배하기 위해 히로시마를 방문했으나 대통령과 만나지 못해 결국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확장억지(核抑止論、extended deterrence)은 한국과 일본을 보호하는 ‘선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모두 미국의 확장억지론을 신봉한다. (윤석열정부는 독자적 핵무장을주장하기도 하므로 기시다 총리보다는 미국에 대한 믿음이 약한 것 같다.) 확장억지론은 (미국이)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그 상대국이 감히 도발할 수 없도록 하게 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확장억지론이 작용하려면 실제 그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상대(북한, 러시아, 중국등의 적국)가 믿어야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실전에 가까운 연습을 해야만 한다. 또한 이 이론은 상대도 마찬가지로 활용할 수 있으므로 결국 서로가 끊임없이 무기를 개발, 실험, 실전에 대비하는 연습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를 보호하고 상대만 골라 죽이는 전쟁은 한 번도 없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무기란 없다.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맡은 강우일 주교는 “핵무기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악입니다.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영구히 살상하는 핵무기의 생산도, 보급도, 매매도 이 지상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범죄적 행동입니다”라고 호소했다.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는 핵무기 사용에 대해 ‘자위가 위협받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불법과 합법을 말할 수 없다’고 했지만, 2021년 1월에 핵무기 금지 조약(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TPNW)이 발효되어 핵무기의 불법성은 한층 더 강고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를 외치고 세계 평화를 원한다는 강대 국가들은 핵무기 보유를 포기하지 않고 당연히 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으며 강력한 핵무기와 전투력을 바탕으로 하는 ‘확장억지’가 평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혐오는 보내고 평화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피해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 모두의 무고한 시민들이다. 시민의 생명을 뺏어가면서 이겨야 하는 전쟁은 없다. 전쟁을 막는 길은 각 나라의 시민이 연대하고 자신의 정부가 전쟁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인류가 민주주의를 조금이라도 이루어내고 진보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확장억지’도 시민의 힘으로 해체시킬 수 있다. 1945년 원자 폭탄 투하는 틀렸다. 그리고 ‘확장억지’도 틀렸다. 지금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만들어낸 한반도의 분단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여러가지 가혹한 뒤틀림을 바로잡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도 위협받을 수 있다.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글 : 박근영
교열 : 김지혜, 민희
참고 자료
기시다 내각 지지율 46.7%...(岸田内閣の支持率46.7%...)、TBS NEWS DIG 2023. 6. 25
“물 들어올 때 노 젓나” 지지율 상승 윤 대통령..., 에너지경제신문, 2023. 5. 30
질문주의서 211회 쓰시모토 기요미, 일본 참의원 홈페이지, 2023. 5. 16
원폭 피해자 챙긴 윤대통령..국내 피해자는 분통,이유는? 가톨릭평화신문, 2023. 6. 8
국제토론회 관련한 평통사 정리- 1차토론: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spark946.org)
2,3차 토론: 평화와통일을 여는사람들 (spark946.org)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기나긴 보상투쟁, 경향신문, 2010. 8. 1